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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과 인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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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원한의원 댓글 0건 조회 6,012회 작성일 21-08-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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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정조대왕의 죽음과 경옥고와 팔물탕의 인삼성분은 서로 관계가 없다.

아래와 같은 인삼에 의한 의료사고 운운하는 내용을 읽어보자.

<가설1. 정조대왕 인삼 의료 사고 사망>

“정조는 화를 참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성격인데 당시 원기를 돋우는 인삼을 처방한 것이 오히려 병을 악화시킨 직접적인 사망원인‘이라고 했다.

“정조의 ‘독살설’은 질병을 고려하지 않고 권력만 놓고 추리한 결과물” 이라며”면서 “정조의 사망원인은 의료사고”라고 했다.

“정조가 앓은 질환은 화가 쌓여서 발생한 종기였는데 열을 내리고 막힌 기를 뚫어주는 약재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기를 보강해 열을 조장하는 인삼을 처방한 것이 화근 이었다”고 했다.

“상태가 호전된 음력 1800년 6월 26일, 정조의 체질에 맞지 않는 인삼이 든 경옥고(瓊玉膏)와 가감팔 물탕(인삼이 포함된 처방명)을 처방해 결국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또 “정조 재위 24년 6월부터 종기치료에 관한 여러 차례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번에 공개된 비밀서찰에는 1800년 6월 15일, 사망하기 불과 13일 전에 “뱃속의 화기가 내려가지 않아 열을 내리는 황련이라는 약제를 몇 근이나 먹었는지 모른다”며 당시 화병으로 인한 심각한 병세를 토로하였다.

당시기록에 의하면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술을 익혔고 전의와 토론할 정도의 조예가 있었다.

"정조는 체질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인삼 처방을 싫어했다. 정조는 음력 6월 24일 어의가 권하는 경옥고 처방을 "나는 원래 온제를 복용하지 못 한다"며 극단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한의학계에서는 인삼은 몸이 찬 사람에게나 먹였을 때 효험이 있는 것이지,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독약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독살설의 근거가 되는 노론 심환지의 친척뻘인 심인의 처방에 대해서도 정반대 해석을 내렸다. 심인은 수은이 든 연기를 쐬어 종기를 가라앉히는 연훈방을 정조에게 권유한다.

"심인이 처방한 연훈방을 사용한 뒤인 음력 6월 25일 정조의 증상은 한결 나아졌으나 다음날 연훈방을 재차 사용했고, 종기 부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의혹 제기는 근거가 없다"
일부 학자들은 정조의 ‘독살설’에 대해 연훈방의 수은 성분 때문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연훈 방을 장기간 복용하면 수은 중독 위험이 있지만 사흘 정도 사용한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조의 죽음은 현재의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의료사고와 마찬가지”이라며 “좋은 약제도 자칫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어 체질에 맞는 약을 제대로 복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설2. 정조대왕은 독살 된 것>

그러나, 정조대왕과 경옥고의 만남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닌 듯 하다.

학계에 아직 보고된 바는 없지만,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외삼촌에게 보낸 10여점의 서찰에 보면, 5군데 이상에서 경옥고에 대한 정조의 예찬이 언급된다. 또 한가지는 북한산 기슭의 부황사의 내력을 알면 더욱 더 경옥고에 인삼이 있어서 그것도 5%도 되지 않는 인삼을 경옥고와 더불어 먹고서 죽음에 이러렀다는 것은 주장이 너무 격한 것 같다.

요즘 같으면, 홍삼을 달아 놓고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사람들 다 죽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경옥고가 이렇게 화열이 가득한 사람에게 무리가 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욕창으로 고생을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정조대왕에게 처방한 것은 한 차원 더 화기를 내린 익수영진고(경옥고의 일종)를 처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죽기 며칠 전에 경옥고 처방이 혹은 팔물탕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고 하는 인삼의료사고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수은을 며칠 쪼인 연훈방에 대하여 옹호하는 주장에 보면 수은 쯤이야 2-3일 정도 노출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고 하는데 경옥고나 팔물탕의 인삼과 수은의 심각성 정도를 본다면 당연히 수은이 중량감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동의보감 정도는 술술 욀 정도의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던 정조대왕이 경옥고가 단방 처방이 아니고 장기간 장복하는 약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옥고를 먹고 죽음에 이러렀을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이 독살설이 되는 것이다. 정조대왕 이후로 조선의 정치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더 이상 국왕의 독자적인 행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자주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조선왕조는 마감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극단적 정치사의 흐름의 변경은 자연사보다는 독살에 무게가 실린다. 독이든 경옥고를 자셨다면 당연히 죽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또한, 정조대왕이 죽은 후 어의에 대한 중형도 독살설에 무게를 더 실어준다. 일반적으로 왕이 사망하면 어의는 책임을 지고 귀양을 다녀 오는 것이다. 그러나, 정조대왕이 사망하자 서둘러 어의를 죽여버린다. 이것은 무언가 덮으려고 했다는 의심이 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정조대왕과 조선정치는 함께 독살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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